나의 늦깎이 은퇴 준비 여정 중 한 장면

2009년 초, 나는 미국에서 첫 집을 샀다.
금융위기의 충격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던 바로 그 시기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위기가 나에게는 오히려 기회처럼 보였다.
연준이 모기지 채권을 대거 사들이면서 금리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30년 고정 대출 평균 금리가 5% 초반까지 내려왔고, 마침 그해 정부는 첫 주택 구입자들에게 세금 공제(First-Time Homebuyer Tax Credit)를 제공하고 있었다. 결혼한 부부에게 주어지는 최대 금액, $8,000. 우리는 그 혜택을 그대로 받았다.
매달 나가는 모기지는 $2,000을 조금 넘었다. 그때 우리 형편으로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남의 일처럼 들렸던 위기
그 무렵 미국 전역의 회사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매일같이 해고와 파산 소식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 회사는 그 위기와 무관해 보였다. 아니, 오히려 처음에는 성장하고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재정이 어려워진 제조 회사들이 절실하게 원가 절감이 필요했고, 우리 회사가 바로 그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었다. 남들이 무너지는 동안 우리는 오히려 그들의 위기 덕분에 매출이 늘었다.
나는 그 시기를 지켜보며 생각했다.
“우리는 괜찮을 것 같다.”
그렇게 위기의 대부분을 별 탈 없이 지나갔다. 착각이었다.
공식적으로 끝난 위기, 그러나 뒤늦게 찾아온 폭풍
금융위기가 바닥을 찍고 회복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뉴스가 나올 무렵, 정작 우리 회사에는 그제야 어려움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예외는 없었다. 다만 시간이 문제였을 뿐이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된 날을 나는 지금도 정확히 기억한다.
매달 한 번씩 회사 키친에서 생일 축하 이벤트가 열렸다. 그날 오전에도 두 명의 동료가 생일 축하를 받았고, 다 함께 케이크를 잘랐다. 웃음소리가 오가는 평범한 오전이었다.
그런데 그 이벤트가 끝나자마자, 경영진 회의가 열렸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방금 생일 축하를 받으며 케이크를 자르던 그 두 사람을 포함해 여러 명이 해고 통보를 받고 곧바로 짐을 싸서 회사를 떠났다.
나는 그 장면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축하 케이크를 함께 나누던 사람이, 몇 시간 뒤 책상을 정리하고 떠나는 모습을.
한국에서도, 독일에서도 결코 볼 수 없었던 풍경이었다.
곧이어 회사 전체에 10% 임금 삭감이 발표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매달 모기지를 갚는 일이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집을 팔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집을 살 때 집값의 거의 100%에 가까운 금액을 대출받았는데, 금융위기로 집값이 폭락하면서, 지금 팔면 오히려 빚이 남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살 수도, 팔 수도 없는 상태.
나는 그때 처음으로 Foreclosure(강제 압류)와 Short Sale(자발적 매각)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절벽 앞에서 내린 결정
Foreclosure는 은행이 집을 강제로 가져가는 절차였다. Short Sale은 집주인이 은행의 승인을 받아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라도 집을 팔고, 남은 부족액을 탕감받는 방식이었다.
절차는 길고 복잡했고, 심사 기준도 까다로웠다. 하지만 금융위기 속에서 은행들도 Foreclosure보다 비용이 덜 드는 Short Sale에 점점 더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분위기였고, 다행히 이 과정을 무료로 도와주는 비영리단체도 있었다.
나는 그 단체의 안내를 받아 Hardship Package(재정적 어려움을 증명하는 서류 묶음)를 준비해서 제출했다.
승인이 나오자마자, 잘 아는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 집을 내놓았다. 집은 팔렸고, 남은 부족한 금액은 탕감받았다.
Short Sale을 선택한 이유는 하나였다. 3~5년 후면 다시 집을 살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는 것. 지금은 무너졌지만, 곧 다시 회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그 어려운 결정을 과감하게 내릴 수 있었다.
그렇게 사라진 첫 집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나는 큰 폭풍 하나를 온몸으로 지나갔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미국에서의 첫 집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여전히 금리도, 부동산 시장도, 회사의 매출 구조가 위기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 모든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신만은 분명했다. 지금은 무너졌지만, 언젠가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
그 확신이 맞았는지는, 지금 살고 있는 두 번째 집이 대답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