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생각하며 다시 바라본 독일

나의 늦깎이 은퇴 준비 여정 중 한 장면

독일을 떠날 때, 나는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새로운 대륙에 대한 호기심과 설렘. 그리고 동시에, 집과 가족을 떠나는 듯한 슬픔.

독일에서의 시간은 우리 가족에게 큰 위로와 성장의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자라고, 독일의 문화를 깊이 체험하며 배운 곳이었다. 가족과 같은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추억을 쌓은 곳이었다. 그 많은 친구들을 두고 와야 했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독일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온도

내가 경험한 독일 사회와 미국 사회의 정서는 많이 달랐다.

독일은 한국과 정서적으로 다른 점도 많았지만, 비슷한 점도 많았다. 서로에게 따뜻한 관심을 갖는 문화는 한국과 닮아 있었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경험이라 일반화할 수는 없다. 실제로 미국 회사에서 만난 베트남 출신 동료는, 나처럼 독일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연구소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기억을 갖고 있었다.

미국에 와서 받은 이미지도 이전에 생각했던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미국을 다양성의 나라, 인종의 용광로라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사회적 계층, 인종, 언어, 피부색에 따라 생활 영역이 독일보다 더 선명하게 나뉘어 있는 듯했다. 특히 이민 1세대는 자신의 문화와 언어 공동체 안에 갇혀 있었고, 그 영향이 2세대까지 이어지는 것을 나는 지켜보았다.

인사 없는 복도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받은 충격은 더 컸다.

어느 날, 회사의 좁은 복도를 걸어가다 맞은편에서 다른 직원과 마주쳤다. 나는 습관처럼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건네려 했다. 하지만 그 직원의 시선은 정면을 향한 채, 그대로 나를 지나쳐 버렸다.

처음엔 그저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이건 이곳의 일상이었다. 서로 알게 된 사람들끼리는 이름을 부르며 가볍게 지나치지만, 낯선 사람, 친하지 않은 사람과는 인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직 한 회사만 다녀본 것이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한국도 비슷할지 모른다. 다만 나는 오랫동안 독일에서, 모르는 사람끼리도 마주치면 반드시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는 문화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그 복도에서의 순간이 나에겐 유난히 충격으로 다가왔다.

작은 것들에서 드러나는 차이

회사 키친에 쌓여 있던, 아주 좋은 품질의 일회용 컵을 보고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절약과 재활용, 환경 보호가 일상이었던 한국과 독일에서 살다가 미국에 오니, 일상 속의 낭비와 환경오염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이것도 순전히 나의 개인적이고 좁은 경험이라 일반화하지는 않겠다. 독일에서는 남자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앉아서 소변을 보도록 교육받고,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도 대부분 그렇게 한다. 그런데 미국 회사에서는, 소변기가 모두 사용 중일 때 사람들이 양변기를 이용하는데, 앉아서 보기는커녕 시트조차 올리지 않고 사용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했다. 이게 타인에 대한 배려의 부족인지, 아니면 청결에 대한 기준 자체가 다른 것인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친밀함의 속도

내가 개인적으로 느낀 것 중 하나는, 친밀함에 이르는 속도와 개방성에서 미국인과 독일인이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었다.

독일인들은 처음엔 차갑거나 거리감이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한번 친구가 되면, 가족처럼 깊고 단단한 관계를 오래 유지한다. 반면 미국인들은 친절하고 쉽게 말을 건네는 문화가 있지만, 그 관계는 대체로 거기까지였다.

물론 독일은 내가 30대 초반에 살았던 곳이고, 미국은 40대 초반에 온 곳이다. 그러니 이 차이가 순전히 문화 때문인지, 나 자신의 나이와 인생 단계에 따른 개방성의 변화 때문인지는 정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의외였던 것: 신분의 문턱

외국인 노동자의 관점에서 보면, 흥미로운 역설이 하나 있었다.

미국은 H-1B 비자 추첨을 비롯해 신분을 유지하는 과정이 매우 까다로운 반면, 독일은 취업 후 영주권과 시민권을 취득하는 과정이 오히려 수월했다. 이건 내게 조금 의외였다. 이민 국가가 아닌 독일이 오히려 더 어려울 거라는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아내는 독일 생활 7년째 되던 해, 간단한 독일어 면접만으로 영주권을 받았다. 그리고 1년 후에는 독일 정부가 지원하는 Integration 프로그램을 거쳐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반면 미국에서는 그 과정이 훨씬 복잡하고 오래 걸렸다.

두 나라, 두 개의 시간

나 같은 엔지니어에게는 커리어 성장과 그에 따른 보상이 중요하다. 그 기준으로 보면, 두 나라는 서로 정반대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독일은 비자 장벽은 낮지만 언어 장벽이 높고, 관료적인 문화와 소득 평준화 경향이 있다. 반면 미국은 비자 장벽은 높지만 언어 장벽이 낮고, 공격적인 커리어 확장과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기회가 활짝 열려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미국은 젊고 활동적인 시기에 적합한 곳이고, 독일은 은퇴 후 안정적인 삶에 적합한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지금 나는 그 활동기의 끝자락에 서 있다. 이제 와서 독일로 다시 돌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을 나도 안다. 하지만 가끔은, 그 조용하고 따뜻했던 독일의 온도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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