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te Starter · 2026년 9월 4일
나의 늦깎이 은퇴 준비 여정 중 한 장면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사할 때만 해도, 나는 여전히 청년의 마인드와 도전 정신을 품고 있었다.
세 번째 대륙이었다. 한국, 독일, 그리고 이제 미국. 하지만 나에게 이곳은 결코 마지막 종착지가 아니었다.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마음 한쪽에 늘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니 영주권을 신청해야 할 필요성도, 그럴 이유도 딱히 느끼지 못했다.
부사장이 사무실로 뛰어온 날
5년째가 되던 어느 날, 부사장이 급하게 내 사무실로 들어왔다.
“왜 영주권을 신청하지 않았나요?”
나는 그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나는, 가능하다면 유럽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기를 여전히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몇몇 연구소와 회사에 조용히 연락을 취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 진전도 없었다.
6년째로 접어들면서, 나는 비로소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마치 은퇴에 대해 아무 준비도 없이 살아오다가, 어느 날 문득 눈을 뜨고 은퇴가 코앞에 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처럼, 영주권 문제도 그렇게 갑자기 나의 현실로 들이닥쳤다.
시작은 평범했다
회사 스폰서로 영주권 절차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H-1B로 이미 6년째 미국에 머물고 있었고, 만기가 다가오고 있었지만, PERM 노동인증을 통해 취업이민을 진행하면 어떻게든 해결될 거라 믿었다. 나 같은 경력을 가진 전문직은 보통 6개월에서 1년 안에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기에, 크게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런데 2013년 4월, PERM이 랜덤 Audit(감사)에 걸렸다.
노동부가 채용 과정 전체를 다시 검토하겠다는 통보였다. Audit에 걸리면 심사가 수개월에서 1년 가까이 늘어나는 게 보통이었다. 회사는 서둘러 서류를 준비해 제출했지만,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H-1B 6년 만기와 셧다운의 겹침
그해 가을, H-1B 6년 만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AC21 규정에 따라 연장이 가능할 수도 있었지만, Audit으로 지연된 PERM 때문에 그 조건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10월 1일, 연방정부 셧다운이 시작되었다.
노동부 시스템이 멈추면서, PERM 처리도, H-1B 연장에 필요한 LCA(노동조건신청서) 승인도 모두 함께 중단되었다. 내가 기댈 수 있던 모든 절차가, 정부 시스템과 함께 그대로 멈춰 서 버린 것이다.
회사는 결정을 내렸다.
“미국에 계속 있으면 불법체류 위험이 있다. 일단 가족과 함께 나가 있어라.”
떠나며 남겨둔 것들
우리는 2013년 12월 4일, 미국을 떠났다.
출국일을 그 날짜로 정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나중에 영주권이 나와서 재입국할 때, 이전 체류 자격의 남은 기간 안에 들어와 신체검사를 받고 필요한 서류를 제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타임라인은 지나칠 정도로 빠듯했다.
두 대의 차량과 짐들을 회사 소유 콘도에 맡겨두고, 우리는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독일에는 여전히 우리 가족의 짐들이 여기저기 친구들의 집에 흩어져 있었다. 마치 완전히 떠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그 흩어진 짐들이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했던 독일을,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다시 밟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설렘을 품에 안고, 미국 생활 6년을 거의 꽉 채운 채, 그리고 독일을 떠난 지 거의 7년 만에, 우리는 다시 독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것은, 나의 영주권 이야기의 시작에 불과했다.
며칠 전 극장에서 본 영화 한 편이 문득 떠오른다. 오랜 방랑 끝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한 남자의 험난한 여정을 그린 이야기였다. 그 여정을 지켜보며, 나는 나의 이민 생활 속에서 겪었던 다사다난한 시간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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