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늦깎이 은퇴 준비 여정 중 한 장면

돌아보면 그 사건은 쪼그라든 돈으로 은퇴 준비 시작을 하게 된 계기였다. 당시엔 그저 빚을 갚고 남은 푼돈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게 내 은퇴 준비의 진짜 출발점이었다.
한국과 독일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은퇴 준비에 관해 내가 아는 건 전부 어깨너머로 들은 이야기였다. 국가가 제도적으로 강제하는 연금 말고도 개인적으로 사적 연금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를 듣긴 했다. 하지만 그건 나와는 다른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여겨졌다.
당장 생활하기에도 빠듯한 급여였다. 저금은 고사하고, 보험이나 사적 연금 같은 건 꿈에도 꾸지 못했다.
미국에 와서도 이런 생활은 한동안 그대로 이어졌다.
오랫동안 묶여 있던 땅
형제들이 공동으로 상속받은 농지가 한국에 하나 있었다. 정부의 수용 계획에 묶여서 오랜 시간 매매를 할 수가 없었다. 개발 계획은 해마다 연기되고 바뀌기를 반복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포기하고 그냥 잊고 지냈다. 그렇게 10년도 넘게 흘렀다. 형제들끼리도 어느 순간부터는 그 땅 이야기를 거의 꺼내지 않았다. 다들 각자의 삶에 바빴고, 언제 풀릴지 모르는 계획을 붙잡고 기다리는 것도 지쳐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땅이 어느 날 갑자기, 전광석화처럼 일이 진행되면서 매각이 되었다.
목돈이 한국에서 미국으로 송금됐다.
며칠간의 VIP
거래 은행에서 연락이 왔다. 평소 나에게 이런저런 상품을 소개해 주고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있던 담당 직원이었다. 당시 연이율 4%였던 Money Market Savings 계좌와, Preferred Banking이라는 프리미엄 계좌 이야기를 하더니, 부지점장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었다. 며칠 후 은행에 가서 부지점장을 만났고, 생각지도 못한 VIP 대접을 받았다.
살면서 은행에서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어색하면서도 묘하게 우쭐한 기분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 호사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현실은 다른 곳에 있었다
당시 나에게는 적지 않은 카드빚, 자동차 론, 학자금 대출, Home Equity 대출이 있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환의 미로를 헤매고 있던 나에게, 이 돈은 오랜 가뭄 끝의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매달 여러 곳으로 나가는 최소 납입금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하나를 갚으면 또 다른 이자가 쌓여있었고, 그 사이에서 저축이나 투자는 생각조차 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니 목돈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투자가 아니라 이 빚들이었다.
적지 않은 양도소득세를 내고 나서, 남은 돈의 대부분을 빚 갚는 데 썼다. Preferred Banking과 Money Market 계좌는 두 달 정도 유지하다가 결국 정리했다. 그 며칠간의 VIP 대접은, 결국 두 달짜리 대접이었던 셈이다.
쪼그라든 돈으로 시작한 것
빚을 갚고 나니 손에 남은 돈은 처음 송금받았을 때에 비하면 많이 쪼그라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 쪼그라든 돈으로 내가 찾은 최선의 선택은, Roth IRA와 Brokerage 계좌를 여는 것이었다.
Roth IRA에는 그해 기본 한도에 캐치업 기여분을 합한 $8,000을 먼저 넣었다. 나머지는 Brokerage 계좌에 넣었다.
굳이 Roth IRA를 먼저 택한 이유가 있었다. 이미 회사를 통해 401(k)는 조금씩 넣고 있었지만, 그건 회사가 정해준 틀 안에서 자동으로 굴러가는 돈이었다. 반면 Roth IRA는 내가 직접 계좌를 열고, 직접 금액을 정해서 넣는 돈이었다. 세금을 미리 내고 넣는 돈이라 은퇴 후에는 인출할 때 세금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남은 돈은 은퇴 계좌 한도 밖에서 좀 더 자유롭게 굴릴 수 있는 Brokerage 계좌로 보냈다.
그때 세운 목표는 단순했다. 은퇴 전까지 해마다 Roth IRA의 최대 납입 한도를 채우는 것.
돌아보면
빚 갚느라 다 써버린 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때는 그렇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사건이야말로 내가 “은퇴 준비는 남의 이야기”라고 여기던 삶에서 벗어나 쪼그라든 돈으로 은퇴 준비 시작에 나서게 된 계기였다. 회사가 넣어주는 401(k)와는 달리, 내 스스로 계좌를 열고 금액을 정해 넣은 첫 돈이었다.
두 달간의 Preferred Banking 대접은 사라졌지만, 그때 연 Roth IRA는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매년, 한도를 채우려고 애쓰고 있다.
돌이켜보면 그 땅은 10년 넘게 아무 일도 없다가, 하필 내가 가장 빚에 허덕이던 시기에 팔렸다. 우연이라기엔 타이밍이 묘했다. 그 돈이 아니었다면 나는 여전히 대출의 미로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을 것이고, Roth IRA라는 단어조차 낯설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가끔 그때를 생각한다. 부지점장 앞에서 VIP 대접을 받던 며칠과, 그 뒤로 이어진 빚 상환의 시간, 그리고 마지막에 남은 돈으로 열었던 작은 계좌 하나. 어느 것 하나 계획했던 건 없었다. 하지만 그 순서 전체가 결국 나를 지금 이 자리, 늦게라도 은퇴 준비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자리까지 데려다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