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린 사람이 돈을 번다

나의 늦깎이 은퇴 준비 여정 중 한 장면

지난 글에서 나는 너무 일찍 팔아버린 삼성 주식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시장은 추측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내하는 사람에게 보상한다는 교훈으로 글을 맺었다.

“비밀번호를 잊어버린 사람이 돈을 번다는 우스갯소리를 이번에 제대로 이해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 교훈을 다시 곱씹게 만드는 일이 있었다.

몰라서 편했던 시절

주식 투자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제 나에게 단순한 “장기투자”를 넘어 은퇴 준비 자체가 되었다. 그렇다면 굳이 매일 주가의 오르내림을 지켜볼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돌아보면, 나의 401(k)가 조금씩 성장하는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시장의 등락을 걱정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건 내가 장기투자에 대한 지식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401(k)에 불입되는 금액 자체가 크지 않았고, 나는 그걸 투자라기보다 세금처럼 자동으로 빠져나가는 돈 정도로 여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은퇴 전까지는 어차피 뺄 수 없는 돈이었다.

2008년 모기지 사태 때도, 팬데믹 기간의 폭락장 때도, 주가 폭락은 나에게 그저 남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뉴스에서 “역대 최대 하락폭”이라는 자막이 뜨고, 동료들이 401(k) 잔액을 보며 한숨을 쉬어도, 나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어차피 만질 수도 없는 돈이었고, 눈여겨본 적도 없었으니 떨어지는 걸 볼 일도 없었다.

아이러니의 시작

그런데 은퇴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금융에 대해 공부를 하고, 주식 투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401(k) 납입액을 늘렸고, Roth IRA는 아예 내가 직접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부터, 전에는 없던 버릇이 생겼다.

은퇴 계좌에 자주 들어가서 잔액을 확인하고, 특정 주식의 주가가 오늘 얼마나 올랐는지 내렸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잦아졌다. 어차피 지금 뺄 것도, 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지식이 늘어난 것과 불안이 늘어난 것이 정확히 같은 시점에 시작됐다는 게 아이러니였다.

그래서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주식으로 돈 번 사람들은 비밀번호를 잊어버렸거나 거래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말.

농담처럼 들리지만, 곱씹어보면 내 지난 이야기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말이었다. 계좌를 들여다볼 줄도, 팔 줄도 몰랐던 시절의 내가 오히려 시장의 등락에 흔들리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다시 찾아본 것

이 버릇이 신경 쓰이던 차에, Fidelity의 “스마트 투자자가 되는 법: 피해야 할 7가지 투자 실수”라는 글을 읽게 됐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버릇이 그 글이 경고하는 실수들과 정확히 맞닿아 있었다.

변동성에 감정적으로 반응해 매도하는 실수. 계좌를 자주 들여다보는 습관 자체가 위험한 건 아니다. 문제는 그렇게 자주 들여다보다가, 하락하는 날 감정적으로 팔아버릴 위험이 함께 커진다는 점이다. 시장은 역사적으로 모든 위기를 극복하고 결국 신고점을 경신해 왔지만, 회복은 뉴스가 안심을 주기 전에 이미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주 들여다볼수록, 그 회복이 시작되기 전 가장 불안한 순간에 팔아버릴 유혹도 커진다. 하락 후 빠져나왔다가 정확한 타이밍에 다시 들어갈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 자체가 이미 실수라는 지적도 뼈아팠다. 나는 그런 재주가 없다는 걸 이미 삼성 주식으로 한 번 증명한 사람이었다.

어제의 승자를 쫓는 실수. 특정 주식의 등락을 매일 확인하는 습관은, 결국 그 주식이 계속 오를 거라 믿고 거기에 더 집중하게 만들기 쉽다. 하지만 시장의 리더십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소수의 주식이나 한 섹터에 집중할수록, 그 리더십이 바뀌는 순간 감당해야 할 위험도 함께 커진다.

상세한 장기 계획 없이 투자하는 실수. 돌이켜보면 나에게 이 습관이 생긴 것도, 명확한 장기 계획 없이 그저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상태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었다. 목표와 시간 지평, 위험 감수 능력을 바탕으로 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다면, 오늘 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가 아니라 계획대로 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면 됐을 것이다. 계획은 한 번 세우고 끝내는 게 아니라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조언도 있었는데, 매일 잔액을 확인하는 나에게는 오히려 그 반대의 리듬이 필요해 보였다.

다시 배우는 것

지식이 없던 시절엔 무지가 나를 지켜줬다. 지금은 지식이 있는 대신, 그 지식을 의식적인 규율로 바꾸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배우고 있다.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아는 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절제까지 필요하다는 뜻이다.

계좌를 자주 들여다보지 않는 것. 확인하더라도 오늘의 등락이 아니라 계획과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보는 것. 그리고 최소한 1년에 한 번은 그 계획 자체를 다시 점검하는 것.

지난 글에서 나는 시장이 인내하는 사람에게 보상한다고 썼다. 이번에 다시 배운 건, 그 인내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몰라서 못 팔던 시절의 인내와, 알면서도 팔지 않는 인내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다.

나는 이제 후자를 배워야 하는 단계에 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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