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늦깎이 은퇴 준비 여정 중 한 장면

경제적 자유를 이룬 사람들은 가능하면 일찍 은퇴하고 싶어 한다. 반대로 목표로 했던 은퇴 준비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은 은퇴를 늦출 수밖에 없다. 단순하고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데 그 단순한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되었을 때는, 그렇게 단순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번 글은 그 마음을 달래준 늦은 은퇴 장점과 조기 은퇴 단점에 관한 연구들을 정리한 기록이다.
비교하는 마음
작년에, 오랫동안 같은 회사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가 은퇴했다. 나보다 두 살 많은 사람이었다. 그가 은퇴하는 걸 지켜보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나 자신과 비교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그 비교는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았다. 그와 나는 시작도 달랐고, 과정도 달랐고, 환경도 달랐다. 그에게는 그것이 당연하고 가능한 일이었을 뿐이다.
나는 늦게 시작한 은퇴 준비를, 이민자이자 외벌이 가장이라는 조건 위에서 해나가고 있다. 같은 출발선에서 달리는 경주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은퇴를 미룬다고만 생각하면 즐거운 일은 아니다. 다행히 나는 내 직업과 내가 하는 일을 즐기고 있어서, 늦은 은퇴에 대한 압박감은 낮은 편이다. 지난 글에서는 62세와 70세 사이에서 따져봐야 했던 숫자들을 이야기했는데, 이번에는 숫자가 아니라 일 자체에 관한 이야기다.
늦은 은퇴 장점, 복음처럼 들린 기사들
그러던 중 조기 은퇴 단점과 늦은 은퇴 장점을 다룬 기사들을 여러 편 접하게 되었다. 이 기사들은 나의 늦은 은퇴에 정당성까지 더해주는 복음처럼 들렸다. 건강과 시력만 허락한다면, 나는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이다.
기사는 여섯 편이었지만, 소개된 연구는 세 가지였다. 같은 연구를 여러 매체가 다룬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 본다.
하나, 늦게 은퇴할수록 사망률이 낮았다 (미국 오리건 주립대, 2016)
오리건 주립대 연구진은 1992년부터 2010년 사이에 은퇴한 미국인 2,956명의 은퇴 시점과 사망 시점을 조사했다.
- 은퇴 당시 건강에 문제가 없었던 1,934명 중 234명(12.1%)이 2010년 이전에 사망했다.
- 건강 문제로 은퇴한 1,022명 중에서는 262명(25.6%)이 사망했다.
- 두 집단의 평균 은퇴 연령은 각각 64.9세와 64.3세였다.
눈에 띄는 건 그다음이다. 건강 상태 등 다른 조건이 같을 때, 은퇴를 늦게 한 사람의 사망률이 확연히 낮았다. 건강한 은퇴자는 정년에 맞춰 퇴직한 사람보다 1년 늦게 은퇴했을 때 사망률이 11% 낮았고, 건강에 문제가 있던 은퇴자도 1년 늦게 퇴직하면 9% 낮았다. 이런 경향은 성별, 인종, 결혼 여부, 교육과 소득 수준, 직종과 상관없이 나타났다.
61~62세 이전에 은퇴한 사람, 65세 전후에 은퇴한 사람, 67~68세 이후에 은퇴한 사람을 비교하면, 늦게 은퇴한 쪽은 65세 전후보다 사망률이 확연히 낮았고 조기 은퇴한 쪽은 확연히 높았다. 연구진은 은퇴를 미루는 것이 신체적, 정신적 기능 저하를 늦춰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해석했고, 일이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나라에서 이 효과가 더 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는 공중보건학 학술지 『역학 및 공동체 건강 저널』(JECH)에 실렸다.
둘, 은퇴를 늦추면 인지 저하가 더뎠다 (독일 막스 플랑크 인구통계학 연구소, 2021)
독일 막스 플랑크 인구통계학 연구소 연구팀은 미국의 ‘건강-은퇴 연구(Health and Retirement Study)’ 자료를 활용했다. 1996년부터 2014년 사이에 일한 55~75세 미국인 20,469명의 건강 정보를 바탕으로, 은퇴 나이를 67세까지 늘렸을 때의 효과를 분석한 것이다.
결과는, 은퇴를 늦출수록 인지 저하가 더디게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이 효과는 사회 계층과 관계없이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비슷하게 나타났고, 교육 수준이 높은 집단에서 보호 효과가 가장 컸다. 연구팀은 직업적 성취와 사회적 활동이 평생에 걸쳐 쌓이면서 인지 기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추측했다. 연구를 이끈 안젤로 로렌티는 많은 나라가 법정 퇴직 연령을 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은퇴를 늦추는 것이 인지 기능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밖의 결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는 학술지 『Population Health』에 실렸다.
셋, 조기 은퇴자의 인지 기능 저하가 더 빨랐다 (UC Davis, 2026)
2026년 4월, 미국 알츠하이머협회가 발간하는 학술지 『Alzheimer’s & Dementia』에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 캠퍼스 연구팀의 논문이 실렸다. 지역사회에 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노인 321명(평균 74.6세)을 추적한 연구다. 이 중 87%가 은퇴한 상태였고, 은퇴자의 66.5%는 65세 이전에 직장을 떠났다. 조기 은퇴군의 평균 은퇴 연령은 57.7세, 65세 이후 은퇴군은 67.9세였다.
연구팀은 평균 2년 남짓 동안 약 16개월 간격으로 최대 세 차례 인지 기능을 평가했다. 처음 시점에는 은퇴 여부나 시기에 따른 차이가 없었다. 차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나타났다.
- 65세 이후에 은퇴한 사람은 조기 은퇴자보다 언어 기억이 떨어지는 속도가 더뎠다.
- 은퇴하지 않고 계속 일한 사람은 은퇴한 두 집단 모두보다 집행기능(계획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속도가 완만했다.
연구팀이 제시한 이유는, 일이 문제 해결과 계획 수립 같은 고차원적 인지 활동을 계속 요구하고, 사회적 교류와 규칙적인 일상을 유지해 준다는 점이다. 이런 요소들이 ‘인지 예비력’을 키워 노화에 따른 기능 저하를 늦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반대로 조기 은퇴는 경제적 불안이나 신체와 정신 건강의 악화와 맞물려 인지 저하를 앞당길 위험이 있다고 했다.
흥미로운 대목도 있었다. 늦게 은퇴한 사람들은 출발 시점의 인지 점수가 오히려 조금 낮은 경향을 보였는데(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는 아니었다), 연구팀은 이들이 낮은 교육 수준, 재정 형편, 만성질환 같은 불리한 조건 때문에, 혹은 경제적 필요와 부족한 은퇴 저축 때문에 일을 계속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 대목은 내 상황과도 겹친다.
다만, 이렇게 읽어야 한다
내게 복음처럼 들렸다고 해서, 이 연구들이 “오래 일하면 오래 산다”를 증명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건 나 자신에게도 분명히 해두고 싶다.
첫째, 세 연구 모두 기존 조사 자료를 분석한 관찰 연구다. 사람들에게 은퇴 시기를 무작위로 배정해 비교한 실험이 아니다. 일을 오래 해서 건강해진 것인지, 건강하니까 오래 일할 수 있었던 것인지는 이런 연구만으로는 가를 수 없다. UC Davis 연구진도 스스로 한계를 밝혔다. 은퇴 당시의 소득과 저축, 심혈관 질환 같은 건강 상태, 우울 증상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고, 직업의 종류나 은퇴 이유에 대한 정보도 없었다. 건강 문제 때문에 일찍 은퇴했을 수도 있고, 이미 인지 저하가 시작됐는데 본인이 모르고 계속 일했을 수도 있다. 표본도 321명으로 작고 특정 집단이다. 헬스조선 기사의 제목은 ‘치매 시기도 늦어진다’였지만, 본문이 소개한 결과는 인지 저하 속도가 더디다는 것이었다는 점도 구분해서 읽어야 한다.
둘째, 효과의 원천은 ‘일’ 그 자체보다 일이 주는 것들일 수 있다. 정신적 자극, 사회적 연결, 규칙적인 일상, 평생 쌓인 직업적 성취. 막스 플랑크 연구팀도, UC Davis 연구팀도 같은 방향으로 설명했다. UC Davis 연구진은 은퇴 이후에도 인지적, 사회적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늦게 은퇴하는 사람은 그것을 직장에서 자연스럽게 얻고, 일찍 은퇴하는 사람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차이로 읽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나에게 남는 것
막스 플랑크 연구팀이 분석한 시나리오가 은퇴 나이를 67세까지 늘리는 것이었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예전에 막연히 목표로 삼았던 바로 그 나이다. 물론 그 숫자가 내게 맞는 정답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 기사들을 읽고 내가 얻은 건 “70세까지 일해도 된다”는 면죄부가 아니다. 다만 늦은 은퇴를 형벌처럼 여기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건강과 시력이 허락하고 내가 일을 즐기는 한, 일은 부족한 준비의 대가가 아니라 정신과 몸을 쓰며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 방식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은퇴 준비를 멈출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준비가 계속되어야, 늦은 은퇴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선택’이 된다.
동료의 이른 은퇴가 그에게 맞는 길이었듯, 나의 길도 나에게 맞는 길이면 된다. 나는 오늘도 내 일을 한다. 그것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준비를 이어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