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당첨된 줄도 몰랐던 비자 추첨

나의 늦깎이 은퇴 준비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2007년 봄, 나는 독일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몇 년 동안 경력을 쌓았고, 그 후 독일로 건너갔다. 처음에는 새로운 직업적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독일은 어느새 내가 살아갈 곳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영주권도 받았다. 정부 지원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가족과 함께 독일에서의 미래를 조금씩 그려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의 한 회사에서 뜻밖의 제안이 왔다.

몇 차례 면접을 거친 끝에 미국으로 이주하는 것을 전제로 한 자리를 제안받았다.

나와 가족은 들떠 있었다.

새로운 나라였다.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리고 커리어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였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고용 계약서에 서명했다. 미국행을 준비하는 동안에는 회사의 독일 지사에서 먼저 일을 시작했다. 급여도 받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미국 비자를 받을 수 있을지 걱정해 본 적이 없다.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다.

회사가 이런 절차를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이민 전문 변호사들이 서류를 준비하고 있었고, 모든 절차가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었다.

미국으로 가는 것은 더 이상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게는 그저 다음 단계였다.

몇 달 후, 비자가 승인되었다.

나와 가족은 미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나는 내가 받은 교육과 경험, 그리고 그동안의 노력으로 이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20년 동안 그 생각에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 알게 된 사실

얼마 전 우연히 H-1B 비자에 관한 글을 읽었다.

H-1B 비자가 어떻게 배정되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때는 어떻게 된 거였을까?

호기심에 당시의 기록과 일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H-1B를 신청했던 해는 비자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나던 시기였다. 신청 건수가 연간 발급 가능한 비자 수를 넘어섰고, 할당량을 초과한 신청서는 무작위 추첨을 통해 선정되고 있었다.

추첨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가 그동안 내 커리어에서 너무나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사실은 상당한 우연에 의해 결정되었던 것이다.

내 비자는 단순히 승인된 것이 아니었다.

선택된 것이었다.

거의 20년이 지나서야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가운데 하나가 어느 정도는 운에 달려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들이 떠올랐다.

만약 그때 내 신청서가 선택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독일에 계속 남아 있었을까?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갔을까?

내 커리어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까?

지금쯤 나는 다른 나라에서 은퇴를 준비하고 있을까?

알 수 없다.

아마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인생은 생각보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우리는 인생을 계획한다고 생각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고, 집을 사고, 아이를 키우고, 은퇴를 준비한다.

하나씩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어가면서 내가 내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그 길에는 내가 전혀 통제할 수 없었던 일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었다.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

어떤 기회가 찾아왔는지.

어떤 문이 열렸고 어떤 문이 닫혔는지.

그리고 때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작은 추첨 하나까지.

돌이켜보면 성공한 사람의 인생은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될 운명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길을 걸어갈 당시에는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랬다.

미국에서 보낸 세월은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많은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커리어를 쌓았다.

가족을 이루고 아이들을 키웠다.

집을 샀다.

영주권을 얻었고, 결국 시민권도 얻었다.

그러면서 나는 다음 목표를 향해 계속 움직였다.

새로운 프로젝트.

승진.

주택 대출금.

자녀 교육.

영주권.

그리고 그때그때 해결해야 할 수많은 일들.

돌이켜보면 늘 눈앞의 일이 중요했다.

은퇴는 항상 나중의 일이었다.

아직 멀리 있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준비하면 되는 것.

시간이 더 생기면 생각해 보면 되는 것.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언젠가’는 계속 뒤로 밀렸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그 ‘언젠가’가 이미 ‘지금’이 되어 있었다.


너무 빨리 지나가버린 시간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나는 401(k)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

IRA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소셜 시큐리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자산을 어떻게 배분해야 하는지, 은퇴 후에는 어디에서 얼마의 소득이 나와야 하는지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때는 그런 것들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커리어를 만들어야 했다.

가족을 부양해야 했다.

새로운 나라에 적응해야 했다.

영어를 배우고, 일하고, 집을 마련하고, 아이들을 키워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가야 했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이렇게 생각했다.

열심히 일하면 결국 괜찮아질 것이다.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이민자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나라에서 자리를 잡는 데 온 힘을 쏟는다. 좋은 직장을 구하고, 경력을 쌓고, 가족을 안정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재정 공부는 나중으로 미룬다.

투자도 나중이다.

은퇴도 나중이다.

문제는 은퇴에는 ‘나중’이라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복리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일찍 시작한 사람에게는 시간이 가장 큰 동반자가 된다.

하지만 늦게 시작한 사람에게 시간은 가장 아쉬운 자원이 된다.

나는 후자에 속했다.


그래서 이 블로그를 시작한다

Late Start Retirement는 재정 전문가가 쓴 블로그가 아니다.

나는 45세에 은퇴한 사람도 아니다.

짧은 시간에 수백만 달러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낸 투자 고수도 아니다.

처음부터 투자를 잘했던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그저 열심히 일하며 살아온 평범한 이민자 엔지니어다.

한국에서 시작해서 독일을 거쳐 미국에 왔다.

커리어를 쌓고 가족을 돌보느라 바쁘게 살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니, 은퇴가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와 있었다.

그제야 조금 늦게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 블로그를 시작한다.

여기에서는 내가 배우는 것들을 기록하려고 한다.

재정에 대해 뒤늦게 알게 된 것들.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내가 저질렀던 실수들.

투자하면서 배우고 있는 것들.

그리고 앞으로의 삶을 위해 만들어가고 있는 은퇴 계획.

누군가에게 정답을 알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잊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어쩌면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이민자들.

엔지니어들.

전문직 종사자들.

부모들.

열심히 일했고, 어느 정도의 안정을 이루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잠깐, 은퇴가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와 있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한 가지를 말하고 싶다.

늦었다고 느끼는 것과 정말 늦은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나는 늦게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내가 몰랐던 추첨에서 시작된 삶

가끔 생각한다.

내가 미국에서 살아온 지난 20년이, 정작 내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하나의 추첨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참 놀랍다.

그때 나는 내가 계획한 길을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렇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인생은 훨씬 더 많은 우연과 변수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은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이제 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 앞에 서 있다.

이번에는 은퇴다.

그리고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해보고 싶다.

운에 맡기고 싶지 않다.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하고,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앞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하나씩 알아가고 싶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겠다는 뜻은 아니다.

아마 앞으로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아무 생각 없이 ‘나중에’로 미루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이곳에 기록하려 한다.

내가 배우는 것들을.

내가 했던 실수들을.

늦게 깨달은 것들을.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갈 나의 은퇴 로드맵을.

나는 늦게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다음 장을 시작하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Late Start Retirement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의 늦은 출발이 어디로 이어질지, 함께 지켜보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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