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늦깎이 은퇴 준비 여정 중 한 장면
미국에서 일을 시작한 첫해였다. 회사에서는 신입 직원들을 대상으로 401(k)에 관한 설명회를 열었다. 그리고 401(k) 운영 회사에서 나온 재정 상담사와 일대일로 상담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해 주었다.
그때 나는 Traditional IRA가 무엇인지 몰랐다. Roth IRA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상담사의 설명을 들으며 401(k)에 가입했고, 월급의 6%를 적립하기 시작했다. 그게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렇게 하는 것이 책임감 있는 직장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듬해 세금 신고를 할 때, 내 CPA가 W-2를 보더니 뜻밖의 질문을 했다.
“앞으로도 계속 미국에서 일할 생각인가요?”
CPA는 내 W-2에 적힌 401(k) 납입액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 질문이 왜 중요한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401(k)에 들어 있는 돈은 59½세가 되기 전에는 일반적으로 페널티 없이 인출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때 나는 미국에 영원히 살 생각이 없었다. 만약 그 사실을 처음부터 제대로 알았다면, 어쩌면 아예 401(k)에 가입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생각이 조금 섬뜩하다. 그렇게 중요한 것을, 단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포기할 뻔했다는 사실이 말이다.
삶이 재정 계획을 밀어낼 때
2008년, 경기 침체가 닥쳤다. 회사는 1년이 넘도록 직원 전체의 급여를 10% 삭감했다. 나는 마침 차를 산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집도 막 구입한 상태였다. 주택 대출금에 자동차 할부금까지 겹치면서 생활이 빠듯해졌다. 결국 나는 401(k) 적립률을 6%에서 2%로 낮췄다.
그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느껴졌다. 아마 실제로도 그랬을 것이다. 몇 년이 지나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대학 등록금이 문제였다. 학기마다 학자금 대출이 늘어났고, 높은 이자율도 따라붙었다.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선택을 했다. 내 401(k)를 담보로 대출을 받은 것이다.
이자율은 약 4%였다. 당시에는 다른 방법보다 훨씬 낮은 금리였다. 그때그때의 상황만 놓고 보면, 내가 내린 결정들은 모두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적립금을 줄이고, 대출을 받고,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내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것이 있었다.
이런 선택들이 내 은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 보는 일이었다.
계산해 보지 않았다. 앞으로 얼마나 모이게 될지 예상해 보지도 않았다. 10년이 넘는 동안 내 401(k)에 얼마가 들어 있는지조차 제대로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하다
그러던 어느 순간부터 직장 동료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월급의 10%를 401(k)에 넣는다고 했다. 또 다른 사람은 14%를 넣는다고 했다. 그런 숫자들을 나는 이전에는 한 번도 비교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얼마나 넣고 있지?’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나는 조금씩, 그리고 불편한 마음으로 한 가지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개인 재정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학교에서도 배우지 않았다. 집에서도 배우지 않았다. 어디에서도 배우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박사 학위까지 공부했고, 엔지니어로서 복잡한 문제들을 다루며 살아왔는데 정작 내가 평생 벌게 될 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교회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Dave Ramsey의 Financial Peace University였다.
나는 아들에게 한번 참여해 보라고 권했다. 어느 날 아들이 워크북을 집에 가져왔다. 나는 별생각 없이 호기심에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읽기 시작했다. 한 번 읽기 시작한 책을 결국 그 자리에서 끝까지 읽어버렸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내 재정 문맹이 끝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거창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생이 갑자기 달라진 것도 아니다. 그저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책 한 권을, 아버지가 우연히 집어 들었을 뿐이다.
따라잡기 시작하다
그 이후 뭔가가 달라졌다. 월급이 오를 때마다 인상된 금액만큼을 401(k) 적립금에 더했다. 조금씩. 그리고 또 조금씩. 해마다 그렇게 했다.
그 사이 회사는 몇 차례 더 큰 회사에 인수되었다. 회사가 바뀔 때마다 401(k) 매칭 조건도 좋아졌고, 내 연봉도 함께 올랐다. 그러면서 나도 조금씩 적립률을 높여갔다. 그리고 지금 나는 월급의 22%를 내 돈으로 401(k)에 넣고 있다.
회사에서 여기에 별도로 8%를 매칭해 준다. 그러니까 실제로 은퇴를 위해 저축되는 돈은 내 소득의 약 30%에 달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30%라는 숫자가 아니다.
내가 직접 부담하는 22%라는 숫자다.
최근 자료를 찾아보니 미국 직장인의 401(k) 본인 납입률은 대략 7~9%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회사의 매칭까지 합쳐도 전체 은퇴 저축률은 대략 12~14% 정도다. 그런 기준으로 보면 내가 지금 납입하고 있는 22%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이 숫자를 바라보면서 나는 자랑스러움보다는 오히려 조금 씁쓸한 마음이 든다.
22%는 내가 특별히 여유가 있어서 넣는 돈이 아니다.
그건 내가 너무 늦게 시작한 데 대한 대가다. 20대와 30대에 자연스럽게 쌓였어야 할 시간이 내게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때 놓친 복리의 시간을 지금 더 많은 돈을 넣어서 메워야 한다. 일찍 시작했다면 훨씬 적은 비율만 저축해도 같은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늦게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은 더 많이 넣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감당해야 할 대가다.

22%라는 숫자가 말해주는 것
이건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지난 몇 년에 걸쳐 서서히 만들어졌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 과정을 하나하나 의식하지 못했다. 월급이 오르면 조금 더 넣었다. 다음 해에는 또 조금 더 넣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전체를 돌아보니 어느새 22%가 되어 있었다.
월급날마다 22%가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 묘한 안도감이 든다. ‘그래도 지금은 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대가도 있다. 그만큼 지금의 생활을 조금 더 절약해야 한다. 더 갖고 싶은 것을 참아야 할 때도 있고, 지금 쓸 수 있는 돈을 미래를 위해 남겨두어야 할 때도 있다. 22%라는 숫자는 단순한 저축률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소비를 포기하고 미래를 사는 비용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 대가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알고 있다. 늦게 시작했기 때문이다.
젊은 엔지니어, 그리고 낯익은 이야기
몇 년 전, 우리 회사에 젊은 엔지니어 한 명이 들어왔다. 베트남 출신이었다. 독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의 다른 회사에서 몇 년 동안 일한 경험도 있었다. 나보다 한참 젊었다.
어느 날 나는 이전 직장에서 가입했던 401(k)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401(k)를 시작했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후 그 돈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전혀 몰랐다. 이전 직장을 떠났다면 그 401(k)를 그대로 두지 않고 새로운 직장의 401(k)나 다른 은퇴 계좌로 옮길 수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저 이전 직장에 두고 온 것이다. 마치 이사를 하면서 새 주소를 남겨놓고도, 그 뒤로 우편물이 어디로 가는지 한 번도 확인하지 않은 것처럼.
그 이야기를 듣는데 이상하게도 내가 생각났다. 교육을 많이 받았다. 커리어에 집중했다. 열심히 일했다.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돈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몰랐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흔할지도 모른다. 엔지니어들 사이에서도 그렇고, 이민자들 사이에서도 그렇고, 나처럼 커리어를 위해 미국에 와서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렇다.
우리는 공부를 열심히 한다. 좋은 커리어를 만든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도 갖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신의 재정적 미래에 대해서는 낯선 사람처럼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내가 앞으로 살아갈 미래가, 바로 내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그 미래라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 더 많이 저축하고 있다. 22%라는 숫자는 나의 성공을 보여주는 숫자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놓쳐버린 시간을 보여주는 숫자에 가깝다. 하지만 동시에 이 숫자는 한 가지 다른 사실도 말해준다.
늦게 시작했다고 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오늘의 선택은 바꿀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조금씩 따라잡아 보려고 한다. 완벽하게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더 이상 ‘나중에’라는 말 뒤에 숨지는 않으려고 한다. 이제는 내가 어디에서 시작했는지 알고, 얼마나 늦었는지도 알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22%.
내게 이 숫자는 단순한 저축률이 아니다. 늦게 시작한 사람이 지금 치르고 있는 대가이자, 그래도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