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세까지 일해야 한다는 사실

나의 늦깎이 은퇴 준비 여정 중 한 장면

지난 몇 년 동안 가끔 낯선 우편물이 우편함에 들어왔다. 은퇴 준비 세미나 안내, Social Security 설명회, “무료 저녁 식사 제공 — 지금 좌석을 예약하세요” 같은 광고였다. 봉투에는 언제나 내 이름이 깔끔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밖에서 나를 지켜보다가, 내가 바로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할 사람이라고 판단하기라도 한 것처럼.

처음에는 봉투를 열어보지도 않고 버렸다. 스팸 메일처럼 느껴졌다. 은퇴 세미나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질 만한, 나와는 다른 누군가를 위한 우편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런 행사의 대상이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직도 그런 세미나에 참석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봉투들이 더 이상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버리는 대신, 최소한 한 번쯤은 내용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재활용함에 넣기 전에 제목이라도 읽어보게 된 것이다.

올해 나는 예순 살이 되었다.

아마 그것이 달라진 이유일 것이다.

Facebook이 보내온 작은 경고

며칠 전, Facebook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예전 사진 몇 장을 보여주었다. 오래전 내 삶의 어느 순간에 찍었던 사진을 다시 꺼내 보여주는 기능이다. 이번에는 한국에 다녀왔을 때 찍은 사진들이었다.

사진을 보면서 나는 그 여행이 3~4년 전쯤이었다고 확신했다. 기억 속에서는 그만큼 최근의 일이었다. 여행의 날씨며, 나누었던 대화며, 자잘한 장면들까지 아직 생생하게 떠오를 정도였다.

그런데 Facebook은 그 사진들이 7~8년 전에 찍힌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예상보다 오래 그 사실을 생각했다. 7~8년이라는 시간이 내 기억 속에서는 3~4년 정도로 압축되어 있다면, 내가 앞으로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시간 역시 어쩌면 착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세월도 지나간 세월과 똑같은 속임수 같은 속도로 흘러갈 것이다. 실제로는 훨씬 많은 시간이 지나가는데도 체감하기에는 짧게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지나가 버린 뒤일 것이다.

내가 원한 적 없는 할인

그리고 며칠 뒤, 가족과 함께 요즘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The Odyssey 영화를 보러 갔다. 온라인으로 티켓을 예매하는데, 결제 화면에서 평소에는 한 번도 눌러본 적 없는 옵션이 눈에 들어왔다.

Senior Discount, 60+.

나는 해당되었다.

영화표 몇 달러를 할인받는 아주 사소한 일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마음에 묵직하게 와닿았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어떤 시스템이, 그것도 특별히 의식하지도 않은 어떤 시스템이, 내 나이를 보고 나를 조용히 ‘시니어’라는 범주에 넣은 순간이었다.

더 이상 우편함에 쌓이는 은퇴 세미나 안내장을 보며 “이건 나를 위한 게 아니야”라고 모른 척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온라인 결제 화면의 드롭다운 메뉴 하나였고, 내가 태어난 연도가 이미 계산을 끝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 대부분 동안 은퇴라는 단어를 별다른 생각 없이 사용했던 것 같다. 그저 ‘나중에’ 있을 일, 굳이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던 인생의 어느 막연한 시점이었다. 하지만 예순이라는 숫자는 쉽게 외면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다. 이제는 지평선이 아직 멀리 있다고 계속 믿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열어보지도 않았던 은퇴 세미나 안내 봉투들, 실제보다 훨씬 최근의 일처럼 느껴졌던 몇 장의 사진, 그리고 나를 조용히 ‘시니어’로 분류해버린 영화표.

그 모든 것이 겹치면서, 내 안의 어떤 부분도 이미 알아차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제 이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제대로 앉아서 내 상황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SSA에 로그인하다

Social Security 계정에 로그인해서 예상 연금액을 확인했다. 401(k)와 Roth IRA의 예상 자산도 다시 살펴보았다. 그리고 솔직히 알고 싶었다.

처음에는 6%였고, 힘들었던 시기에는 2%까지 낮췄다가, 결국 지금은 내가 급여의 22%를 401(k)에 넣고 있다. 여기에 회사의 매칭을 더하면 은퇴를 위해 들어가는 돈은 전체적으로 30%에 이른다.

그 긴 세월 동안 내가 납입해 온 돈이 실제로 지금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특별히 어떤 답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숫자가 그저 나를 안심시켜 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마치 이렇게 말해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괜찮아.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숫자는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숫자가 말해준 것은 이랬다. Social Security, 은퇴 계좌의 성장, 그리고 앞으로 남은 근로 기간이 서로 맞물려 지속 가능한 은퇴 계획을 만들려면, 적어도 67세까지는 계속 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숫자를 받아들이는 시간

67세가 비극적인 숫자는 아니다. 대부분의 기준으로 보아 특별히 늦은 나이도 아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이 적용받는 Social Security의 정년퇴직연령(Full Retirement Age)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통계에서 보던 67이라는 숫자와, 내 수입과 내 계좌, 그리고 나의 늦은 시작을 바탕으로 계산된 67이라는 숫자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그 숫자는 생각보다 훨씬 개인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한동안 그 숫자와 논쟁하고 싶었다.

시장이 예상보다 더 좋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너무 보수적으로 계산한 것은 아닐까? 조금만 다르게 계산하면 더 일찍 은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 블로그를 써오면서 조금씩 배워가고 있는 내가 알고 있었다. 현실과 협상하려고 애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중요한 것은 이제 처음으로 내게 실제 숫자가 생겼다는 사실이었다. 막연한 느낌이 아니었다. 그저 ‘나중에’도 아니었다. 내 계좌와 현재 상황을 바탕으로 계산된 구체적인 은퇴 연령이 생겼고, 이제 그 숫자를 기준으로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앞으로의 7년이 의미하는 것

앞으로 7년을 더 일한다는 것은 결코 아무것도 아닌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긴 시간도 아니다. 7년은 내 계획을 실제로 수정하고 조정하기에 충분히 긴 시간이면서, 동시에 이제는 그 계획의 윤곽이 분명하게 느껴질 만큼 짧은 시간이다. 나는 이것이 이번 계산을 해본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한다. 불편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었지만, 은퇴를 막연한 걱정거리에서 구체적인 프로젝트로 바꾸어 놓았다.

이제 목표가 보인다. 401(k) 납입을 어떻게 유지하고 늘려갈지, Social Security를 언제 신청할지, 투자 자산이 어느 정도 성장해야 하는지 대략적인 그림도 보인다. 나는 오랫동안 이 숫자를 피했다. 생각해보니 그 봉투들도 함께 피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숫자를 마주하고 나니, 예상했던 것만큼 두렵지는 않다.

67이라는 숫자는 판결문이 아니다.

그저 내가 앞으로 계획을 세울 수 있게 해주는 출발점이다.

67세.

그곳을 목표로 하고 있다. Facebook이 보여준 그 사진들과 영화표가 내게 가르쳐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것이다.

내가 준비가 되어 있든 아니든 앞으로 7년은 지나간다.

그렇다면 그 7년을 준비하는 데 쓰는 편이 낫다. 이제 진짜 일이 시작된다. 어쩌면 다음에 우편함에 그 봉투가 하나 더 들어온다면, 이번에는 열어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다음번에는 영화표를 예매하면서 Senior Discount를 망설임 없이 눌러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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