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시작, 세 번의 폭풍

나의 늦깎이 은퇴 준비 여정 중 한 장면

H-1B 비자가 승인되기 전까지 나는 독일에서 거의 반년 동안 원격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본사에서 전화가 왔다. 이제 미국으로 옮길 때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와 아내, 그리고 두 아이의 비자가 모두 승인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우리는 짐을 꾸렸다. 가져갈 수 있는 것만 여섯 개의 여행 가방과 여덟 개의 위탁 수하물에 나누어 넣었다. 나머지 물건들은 독일에 남겨두고 친구들에게 맡겼다. 그리고 아직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는지 제대로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미국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2008년 경기 침체가 찾아왔다.

그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패턴

우리 회사는 다른 산업에 비해 경기 침체의 영향을 조금 늦게 받았다. 덕분에 우리에게는 이상하리만큼 숨을 돌릴 여유가 있었다. 금융위기에 대응해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낮추자 모기지 금리도 함께 내려갔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집을 사게 된 계기가 되었다. 비교적 낮은 금리로 집을 구입할 수 있었다.

여기서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 당시 나는 금리나 부동산, 거시경제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집이 필요했기 때문에 집을 샀을 뿐이다. 왜 그 시기에 집을 살 수 있었는지, 어떤 경제적 상황이 그런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니, 내가 당시 어떤 순간을 지나고 있었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처음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졌다. 다른 회사에서 해고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읽고, 뉴스 헤드라인을 보면서도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는 아니겠지. 아직은 아니야.”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사의 매출이 줄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에게도 해고의 바람이 불어왔다.

이것이 처음 맞닥뜨린 폭풍은 아니었다

지금 돌이켜봐도 여전히 놀라운 부분이 있다. 내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경제가 무너지는 모습을 이미 한 번 이상 경험했다는 사실이다.

1996년, 나는 박사 학위를 마치고 첫 직장에 들어갔다. 그리고 불과 1년 뒤, 한국을 아시아 외환위기가 덮쳤다. 기업들이 무너졌다. 회사들이 합병되거나 아예 사라졌다. 거리에는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넘쳐났다.

몇 년 뒤에는 연구원 자리를 찾아 독일로 옮겼다. 그런데 독일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닷컴 버블이 터졌다. 세계 경제가 둔화되기 시작했다. 독일은 통일 이후의 비용과 유로화 도입 과정에서 겪고 있던 구조적인 성장통까지 한꺼번에 떠안으면서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었다. 사람들은 독일을 **‘유럽의 병자’**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실업률은 10~13% 정도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나는 미국으로 왔다.

그리고 세 번째 경기 침체를 만났다.

세 대륙. 세 번의 새로운 시작. 그리고 내가 도착할 때마다 거의 어김없이 찾아온 세 번의 경제적 폭풍.

지금도 이 반복되는 패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어쩌면 타이밍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우연일 수도 있다. 세계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다 보면, 언젠가는 누구든 경기 침체와 마주칠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안다. 나는 그때마다 무언가 특별한 방법을 찾아 위기를 헤쳐 나갔던 것은 아니다. 어떻게 살아남을지 계획을 세우고 선택했던 기억도 별로 없다. 그저 시간이 지나 폭풍이 지나갔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거의 우연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일종의 안개 속을 지나온 것 같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너무 불안하고 낯설어서, 정작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바라볼 여유조차 없었다.

결코 쉽지만은 않았던 이야기

하지만 또 한 가지는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미국에서의 이민 생활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어려움에는 처음 집을 샀던 일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회사 전체에 10%의 임금 삭감이 결정되었을 때, 그 여파는 내가 원래 받던 급여를 기준으로 빠듯하게 계산해 놓았던 모기지 상환금에 그대로 닿았다. 갑자기 소득이 10% 줄어드는 상황을 감당할 여유가 별로 없었다.

한동안 정말 힘들었다. 은행에서 보내온 두꺼운 모기지 납부 책자가 식탁 위에 놓여 있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여러 장의 납부 쿠폰이 빼곡하게 들어 있던 그 책자가 실제 무게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졌던 기억이다.

첫 번째 집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좀 더 자세히 풀어보려고 한다. 그 이야기는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글이 될 만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만 한 가지만 말하고 싶다. 나는 지금 두 번째 집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안정이라는 것의 가치를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

세 나라에서 세 번의 경기 침체를 겪으면서 한 가지는 배웠다.

폭풍은 내가 준비되어 있든 아니든 찾아온다는 것.

하지만 그때의 경험이 내게 가르쳐주지 못한 것도 있었다.

아직 보이지 않는 폭풍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것을 깨닫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아직도 쓰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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