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늦깎이 은퇴 준비 여정 중 한 장면

미국 시민권 취득 후기를 쓰자니 여권 이야기부터 떠오른다. 해마다 세계 여권 파워 순위가 발표된다. 비자 없이 갈 수 있는 나라가 얼마나 많은가를 따지는 순위다. 올해 헨리 여권 지수(Henley Passport Index)에서 한국은 일본, 아랍에미리트와 함께 공동 2위였다. 비자 없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188곳이다. 미국은 10위, 약 180곳이다.
숫자만 보면 나는 손해 보는 거래를 한 셈이다. 공동 2위 여권을 내려놓고 10위 여권을 받았으니까. 이 글은 그 거래를 하게 된 과정과, 거래 뒤에 남은 숙제에 관한 이야기다.
서두를 이유가 없었던 시민권
영주권을 받은 뒤 우리 가족은 미국에 완전히 정착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런데도 시민권은 오랫동안 필요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여권 순위가 시민권을 받은 주된 이유는 아니었다. 다만 그 순위가 말해 주듯 한국 여권은 어디서나 통했고, 굳이 서두를 동기가 없었다.
돌아보면 은퇴 준비를 늦게 시작한 것과 똑같은 이유였다.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언젠가 그날이 오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시민권 신청도 계속 미뤄 두었다. 나는 미리 계획을 세우고 시나리오를 그려 보며 준비하는 성격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아들이 뿌리를 다시 생각나게 했다
계기는 큰아들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신학대학원(seminary) 과정을 밟던 아들이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결단했고, 시민권도 먼저 받았다. 한인 목회자는 대개 한인들을 섬기지만, 아들은 미국 교회의 목회자가 되는 길을 택했다. 미국에 완전히 뿌리를 내리겠다는 결정이었다.
그 선택은 우리 가족이 미국에 완전히 정착하겠다고 했던 결정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미뤄 두었던 시민권 신청을 서두르게 되었다.
곧바로 미국 이민국(USCIS)의 온라인 계정으로 시민권 신청서(N-400)를 전자 접수했다. 서류를 쓰다가 한 가지에서 오래 멈췄다. 이름이었다. 한국 이름을 그대로 쓸 것인가, 직장에서 쓰는 영어 이름으로 바꿀 것인가. N-400에는 귀화하면서 이름을 바꾸는 선택지도 있다. 고심 끝에 한국 이름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은퇴를 바라보는 나이에 이름을 바꾸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더 젊었다면 다른 결정을 했을지도 모른다.
딱딱한 절차 속의 뜻밖의 온기
얼마 뒤 생체 정보를 등록하는 날짜가 잡혔다. 지정된 장소에서 사진을 찍고 지문을 등록하는 절차였다. 긴장하고 갔는데, 담당 직원은 한국에서 군 복무를 했다며 반갑게 말을 걸었고, 한국 음식과 그 지역의 기억을 한참 꺼내 놓았다. 서류를 접수하던 여직원은 자기가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면서 한글 표기법을 물어 왔다.
딱딱할 줄 알았던 절차의 한 단계가, 생각지도 못한 친절과 따뜻한 대화로 넘어갔다.
아침 20분의 100문항
그곳에서 시민권 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 작은 책자를 받아 왔다. 이어서 인터뷰 날짜가 잡혔다. 2주쯤 남았을 때부터 아침에 일어나 일을 시작하기 전 20~30분씩 책자를 읽고 예상 문제를 외웠다. 일주일쯤 지나자 100문항을 모두 한 번 훑었고, 남은 일주일은 반복하면서 완전히 외웠다. 개괄적이기는 해도 미국의 역사와 정부를 한 번 정리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인터뷰와 시험은 무난히 지나갔다.
참고로 이 시험은 그 사이 바뀌었다. 2025년 10월 20일 이후에 신청서를 접수한 사람은 문항 수가 128개로 늘어난 새 시험을 본다. 면접관이 최대 20문제를 묻고 12개를 맞혀야 통과한다. 내가 본 것은 100문항 중 10문제를 묻고 6개를 맞히면 되는 이전 시험이었다. 인터뷰에는 영어 읽기, 쓰기, 말하기를 확인하는 절차도 함께 들어 있다.
선서 전에는 아직 시민이 아니다
마지막 단계가 충성 서약이었다. 인터뷰와 시험을 통과해도 귀화식에서 선서를 하기 전까지는 미국 시민이 아니다. 선서를 마치고 영주권을 반납하면 귀화 증명서를 받는다. 온라인으로 N-400을 접수한 날부터 시민권을 받기까지 6개월쯤 걸렸다.
여권과 함께 내려놓은 것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한국 국적법은 한국 국민이 자진해서 외국 국적을 취득하면 그 외국 국적을 얻는 때에 한국 국적을 잃는다고 정하고 있다. 선서를 한 날 한국 국적은 이미 사라졌고, 한국 여권도 더는 쓸 수 없게 되었다.
여기에 아직 마치지 못한 숙제가 하나 있다. 국적을 잃은 사람은 영사관에 국적상실신고를 해야 한다. 나는 이 신고를 아직 하지 못했다. 총영사관이 있는 도시까지 차로 여섯 시간을 달려가야 하는데, 미리 예약을 해야 하고 그 예약은 늘 한 달 넘게 꽉 차 있어서 원하는 날짜를 잡기도 어렵다. 그렇게 미루다 보니 시간이 흘렀다.
신고를 곧바로 하지 않았다고 과태료를 물리는 규정은 없다고 영사관은 안내한다. 다만 신고를 마치지 않으면 나중에 한국 비자를 받을 때 등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안내하는 공관도 있다. 법으로 정해진 의무이니 언젠가는 마쳐야 할 일이다.
한국 국적을 되찾을 계획은 없다. 참고로 만 65세 이상이 되어 한국에 영주 귀국하려는 경우에는 ‘외국국적불행사 서약’으로 미국 시민권을 유지한 채 한국 국적을 회복하는 제도가 있다고 한다. 나는 이용할 계획이 없지만, 노후를 한국에서 보내려는 분들에게는 알아둘 만한 길이다.
그러니 이 글 맨 앞의 거래는 숫자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순위표에서 내려갔다는 것보다, 한국 국민이라는 법적 자격을 내려놓았다는 것이 더 큰 일이었다.
새 여권으로 해 본 것들
미국 시민권을 받은 뒤 작년에 처음으로 미국 여권으로 가족과 한국을 방문했다. 올해에는 회사 출장으로 브라질에 다녀왔다. 그리고 올해 11월 중간선거에서는 난생처음 투표권을 행사할 예정이다. 영주권자일 때는 할 수 없던 일이다. 영주권자는 미국을 오래 비우면 신분이 위태로워질 수 있지만, 시민권자에게는 그런 제약이 없다는 점도 은퇴 후의 선택지를 넓혀 준다.
서류상의 미국인, 마음속의 한국인
그런데 이렇게 미국 시민의 의무와 권리를 하나씩 행사하면서도, 문득 내가 과연 미국인인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내 내면은 여전히 한국인의 정체성이 더 뚜렷하다. 나와 아내에게 미국의 문화적, 정서적, 언어적 장벽은 여전히 높다. 미국 회사에 다니고 미국 교회에 나가지만, 그들의 서클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지는 못하고 있다.
두 아들은 반대다.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한국의 문화와 정서와 언어가 장벽이다. 한 집 안에서 부모와 아들들이, 서로 반대 방향에서 비슷한 크기의 거리를 건너고 있는 셈이다.
은퇴 준비 목록에 한 줄이 늘었다
나의 은퇴 준비 목록에는 한 줄이 더 추가되었다. 401(k)와 Roth IRA와 Social Security가 전부가 아니다. 법적으로, 서류상으로만 미국인이 아니라, 문화적이고 정서적이고 언어적인 장벽을 넘어서는 과제가 남아 있다.
미국 시민권 취득 후기를 마치며 한 가지만 덧붙인다. 여권의 순위는 내려갔다. 하지만 미국 시민이 된다는 것은 서류 한 장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서류와 마음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래도 그 숙제를 풀어 갈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