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늦깎이 은퇴 준비 여정 중 한 장면

아들의 계좌를 대신 옮기다. 큰아들은 한동안 직장 생활을 했다. 그러다 지금은 교회 개척과 캠퍼스 사역자로 일하고 있다.
직장을 다니던 시절, 그는 회사의 401(k)에 가입했었다. 그리고 사역의 길로 들어서면서, 그 401(k)를 Roth로 롤오버했다.
믿고 맡겼던 곳
아들은 오래전부터 매달 수수료를 내며 개인 재무를 관리해주는 회사를 이용하고 있었다. 그 롤오버도 그 회사를 통해 처리했다.
당시에는 그게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였을 것이다. 전문가에게 맡기면 알아서 잘 관리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을 테니까. 나 역시 오랫동안 비슷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다. 잘 모르는 분야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당연하다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몇 가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매달 나가는 돈, 그리고 보이지 않던 돈
매달 빠져나가는 관리 수수료는 눈에 보였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Roth와 Brokerage 계좌 안에 담긴 ETF와 뮤추얼펀드 종목들. 그 종목들 자체의 수수료(expense ratio)가 상당히 높다는 사실을, 나는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매달 내는 관리 수수료는 청구서에 명확히 찍혀 나오니 알아채기 쉽다. 하지만 펀드 자체에 숨어 있는 수수료는 그렇지 않다. 계좌 잔액에서 조용히, 매년 조금씩 빠져나간다.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꾸준히.
매니지드 계좌에 오래 맡겨두면, 두 겹의 수수료가 겹겹이 쌓인다. 관리 수수료와 펀드 자체의 수수료. 각각은 1년에 몇 퍼센트밖에 안 되는 작은 숫자처럼 보이지만, 그게 몇십 년 쌓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복리로 불어나야 할 돈의 일부가, 매년 조용히 다른 곳으로 새어나가는 셈이다. 젊을수록 이 차이는 더 크게 벌어진다. 아들은 이제 3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으니, 앞으로 이 계좌를 들고 갈 시간이 아직 한참 남아 있다. 그 긴 시간 동안 매년 새어나가는 몇 퍼센트를 막는 것이,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몇 달러의 수수료를 아끼는 것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가진다.
사역자에게는 여유가 없다
아들은 지금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많지 않다. 사역이라는 일 자체가 그렇다. 안정적인 급여가 보장되는 직장과는 다르다.
그런 아들에게, 매달 수수료를 내면서 게다가 펀드 자체의 수수료까지 이중으로 부담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나는 아들에게 제안했다.
“더 이상 그곳에 맡기지 말고, 내가 관리해줄게.”
사실 나 역시 Roth와 Brokerage 계좌를 직접 운영한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회사 401(k)가 Fidelity에서 다른 운영사로 롤오버된 뒤, 나는 Fidelity 계좌가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야 그 계좌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은퇴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갖기 시작할 무렵이었고, 나는 그 계좌를 그대로 활용해서 내 개인 Roth와 Brokerage 계좌를 열었다. 그때부터 직접 공부하며 운용해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사이 내가 직접 공부하고 관리해왔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래서 아들의 계좌도 내가 넘겨받아 관리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동의를 얻고, 옮기다
아들의 동의를 얻은 뒤, 나는 이전 금융회사에 있던 그의 Roth와 Brokerage 계좌를 직접 Fidelity로 롤오버했다.
수일에서 일주일 정도 걸려 자금이 모두 옮겨진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30대 중반을 향해 가는 아들에게 맞는 투자 포트폴리오를, 수수료가 낮은 종목들로 다시 골라 담았다.
되짚어보게 되는 것
이 일을 하면서, 나는 나 자신의 지난 시간을 자꾸 떠올리게 됐다.
나는 HSA를 뒤늦게 이해했다. 국민연금을 별생각 없이 없앴다. 401(k) 납입률을 오랫동안 6%에 묶어둔 채로 지냈다. 늦게 알았고, 늦게 고쳤다.
그런데 아들은 나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수수료가 낮은 계좌로 자산을 다시 정리했다. 물론 이번엔 아들이 스스로 알아챈 게 아니라 내가 먼저 발견하고 제안한 일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나처럼 몇 년, 몇십 년을 그 상태로 흘려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이제 막 직접 운용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면서, 아들의 계좌까지 넘겨받아 관리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완벽한 전문가라서가 아니었다. 다만 내 계좌만큼은 직접 들여다보고 공부해왔다는 것, 그 경험 하나가 아들의 계좌도 내가 충분히 맡아서 관리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늦게 시작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는, 자기 자신의 시행착오를 자식에게는 반복시키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뒤늦게 깨달은 것들을, 아들은 훨씬 이른 시점에 바로잡을 수 있었다.
그게 이번 일의 가장 큰 소득이었다. 수수료 몇 퍼센트를 아낀 것보다, 어쩌면 그게 더 중요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